700㎒ 주파수정책이 1년 이상 국회에 발목을 잡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지상파 방송사에 700㎒ 주파수를 떼줘라"라는 게 국회의 요구다. 하도 여러 번 들어서인지 국회를 주파수정책의 협상 대상으로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오해도 생기고 있다.
그런데 잠깐 따져보자. 전 세계 어디에 주파수정책을 의회에서 결정하는 나라가 있는가. 사실 과거 체신부, 정보통신부 시절부터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등 통신분야를 담당하는 전문부처가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주파수정책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주파수정책은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결정한다.
주요 국가들이 주파수정책을 독립된 전문부처에 맡기는 이유는 주파수정책이 그만큼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기술적 전문성과 함께 국제적 협상도 최고의 전문적 협상력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전문성 없는 국회가 주파수정책을 재단하고 있다. 가끔씩은 국회가 700㎒ 주파수를 이동통신용으로 써야 한다고 자신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통신사 편"이라고 되레 매도하기까지 한다. 심지어는 국회가 700㎒ 주파수를 방송사에 떼주라고 주장하는 근거조차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울트라고화질(UHD) 방송을 지상파 방송사를 통해 모든 국민이 돈 내지 않고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국회의 주장이다. 그러나 주파수만 갖고는 절대 일반 가정에서 UHD 방송 못 본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UHD 방송을 내보내더라도 일반 가정에 200만~500만원을 호가하는 UHD TV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지상파 방송사에 700㎒ 주파수를 나눠주기만 하면 온 국민이 UHD 방송을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님들의 주장대로 700㎒ 주파수를 지상파 방송사에 나눠줘 국민이 돈 안 내고 UHD를 볼 수 있도록 하려면 비싼 UHD TV를 살 수 없는 저소득층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현재 19대 국회에서 주파수정책에 관여했던 국회의원님들이 지상파 UHD 방송이 시작되는 3~4년 쯤 뒤 UHD TV 구입예산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해놓은 다음에야 국회의 700㎒ 논리가 일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UHD TV 구입비용에 대해 얘기하는 국회의원은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전 국민의 8%만 집에서 안테나로 지상파 방송을 보고 있는 현실에서 UHD 방송 시대에는 전국 모든 가정이 안테나만 세우면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기본적 시청권에 대한 약속조차 내놓지 않은 채 주파수만 떼주라고 한다.
결국 이래저래 국회가 주파수정책에 관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행정부 전문 정책에 대한 월권이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 아마도 현재 국회의원들은 내년 총선에 방송사들의 협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선거 때문에 국회가 무작정 지상파 방송사 편을 들고 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일각의 삐딱한 뒷말이 무성하다.
그러나 진정 국회의원님들이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지상파 방송사의 카메라가 아니라 산업을 헤쳐서는 안 된다는 말 없는 국민의 속마음 아닐까.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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